전시 소개
LIM SEONG SEOP - 동화의 형상으로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루안앤코는 조각가 임승섭의 개인전 《LIM SEONG SEOP》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화려한 수식어나 개념적 부제를 덜어내고, 오롯이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다. 작가는 그간 고양이, 치타, 토끼 등 친숙하고 의인화된 동물 모티프를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다층적인 내면을 조명해 왔다. 흙으로 형태를 빚고 FRP로 캐스팅한 뒤, 수천 번의 연마 과정을 거쳐 도료(Car paint)로 마감하는 그의 조각은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유려함 뒤로 치열한 노동의 시간과 깊은 실존적 사유를 품고 있다.
전시의 타이틀 《LIM SEONG SEOP》은 작가의 이름인 동시에 세상과 조응해 온 창작자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작가에게 동물은 단순한 우화적 재현이나 귀여운 캐릭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속도와 경쟁,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 자신의 투영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의 간극을 좁히는 ‘동화적 조형’의 형식을 빌려, 우리가 외면해 온 불안과 결핍, 그리고 존재의 가치를 무겁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마주하게 한다.
전시의 서사를 이끄는 것은 존재의 자리를 묻는 고양이와 치타의 형상이다. 〈I am here〉 연작은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 위, 무수한 인파 속에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길고양이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흑과 백의 갈림길을 상징하는 스트라이프 좌대 위에 선 고양이는 세상의 인정이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여기에 오롯이 존재한다”라는 단단한 선언을 건넨다. 한편 대형 조각 〈은하수를 보다〉(2020)는 시속 120km의 극한 질주 끝에 서식지 감소와 체격의 한계로 멸종 위기에 처한 치타의 숙명에 주목한다. 고도화된 전문성과 경쟁의 굴레 속에서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절망을 비춘 이 작업은, 질주를 멈춘 치타와 소녀가 나란히 밤하늘의 은하수를 올려다보는 정적인 구도를 통해 상처 입은 영혼들이 스스로를 회복해 가는 고요한 치유의 여정을 제시한다.
또 다른 주요작 〈토끼가 넘어 간다 (Climbing)〉(2017)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하얀 토끼의 매개적 역할을 빌려와 마음속에 머무는 생각과 감정의 실체를 시각화한다. 명상 중에 마음을 비워내려 애쓸수록 인물의 몸을 장난스럽게 타고 넘는 토끼들은, 떨쳐내야 할 번뇌가 아닌 억누를 수 없이 솟아나는 솔직한 내면의 결이다. 작가는 이를 유쾌한 위트로 감싸 안으며 비워내지 못한 상태 그대로를 따뜻하게 긍정한다. 여기에 역동적인 활기를 담은 2026년 신작 〈Let's play #2〉와 중력을 거스르는 순간을 포착한 〈도약〉, 〈무중력〉, 〈잉어꿈〉 등의 작업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일상에 경쾌한 숨구멍을 틔워주는 조형적 확장을 보여준다.
임승섭의 조각에서 ‘귀여움(cuteness)’과 티 없이 완벽한 표면은 결코 단순한 시각적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거친 사포질과 끊임없는 수정 작업을 묵묵히 견뎌낸 치열한 물리적 노동이 응축된 침묵의 공간이다. 작가는 고도의 집중과 연마 과정을 통해 조각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며, 그 말간 순백의 표면 위에 현대 사회의 페이소스와 인간적인 온기를 함께 새겨 넣는다.
루안앤코는 이번 전시를 통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속도에 휩쓸려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 임승섭의 조각들이 건네는 덤덤한 눈빛 속에서, 관람객들은 세상의 기준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오롯이 발 딛고 선 나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